도서관에서 빌린 길영로의 《기획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책을 반납했다. 이 글은 그중 2부 ‘문제해결형 기획의 프로세스와 방법론’을 읽으며 남긴 독서노트다. 앞서 정리한 1부가 용어·목적·팩트의 기준을 세우는 내용이었다면, 2부는 그 기준으로 문제를 어떻게 좁히고 실행 가능한 기획으로 연결하는지를 다룬다.
2부를 읽으며 가장 분명해진 것은 문제해결형 기획이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기획이 왜 태어났는지 확인하고 목적과 제목을 정하고 팩트로 현상과 배경을 분석한다. 그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컨셉과 해결책, 실행계획을 말할 수 있다.
2부에서 먼저 확인하게 된 것
2부를 읽으며 먼저 떠올린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이 기획은 어떤 변화에서 시작됐는가?
- 이 일은 왜 존재해야 하며, 목적과 제목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 현상·원인·배경과 기획과제를 팩트와 논리로 연결했는가?
- 해결책이 실제 액티비티와 실행계획, 리스크 대책까지 이어지는가?
이 질문을 건너뛰면 해결책부터 찾게 된다. 하지만 문제해결형 기획은 변화와 목적을 확인하고 팩트로 문제를 좁힌 다음에야 실행으로 넘어간다.
문제해결형 기획은 변화에서 출발한다
문제해결형 기획의 첫 단계는 ‘기획의 방향 결정’이다. 의뢰인이나 상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밝히는 과정이다. 기획이 왜 시작됐는지 확인할 정보를 수집하고 목적을 명확히 한 뒤 기획의 타이틀을 정하는 일도 이 단계에 포함된다.
2부를 읽으며 정보의 출발점은 ‘변화’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어떤 변화가 생겼다면 관계자가 그냥 넘길 수 없는 상황이므로 점검해야 한다. 변화가 있는 곳에서는 문제가 생기거나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변화를 파악한 뒤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면 문제해결형 기획의 프로세스를 밟고 새로운 기회가 생긴 상황이면 가설검증형 기획의 프로세스로 넘어간다.
나는 이 구분이 기획의 방향을 잡을 때 특히 중요하다고 봤다. 문제가 있는데도 기회를 찾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해결해야 할 불편을 놓칠 수 있다. 반대로 기회가 열렸는데 문제만 고치려 하면 새로운 가능성을 좁혀 버릴 수 있다. 같은 변화라도 어떤 일이 생겼는지 먼저 구분해야 다음 단계가 달라진다.
목적과 제목이 기획의 방향을 결정한다
목적은 사물의 존재 이유이자 일의 존재 이유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일이 현 시점에서 우리 팀에 왜 존재해야만 하는가?”를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대목적과 개별 목적을 혼동하는 일이다. 매출 증대, 이익 증대, 판매 목표 달성은 기업의 거의 모든 일이 공유하는 대목적이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의 목적을 설명하려면 이런 대목적이 아니라, 그 일 자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정해야 한다. 건강관리가 대목적이라면 무릎관절 보호는 지금 하려는 일에 가까운 개별 목적이 될 수 있다.
개별 목적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정하는 방법으로 ‘브레이크스루 씽킹’이 소개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목적부터 명확히 하고 진행 중 도저히 풀리지 않는 난관을 만났을 때 최초의 단계로 돌아가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는 사고방식이다. 목적을 다시 보면 기존 방법을 고치는 데서 벗어나 다른 접근을 찾을 수 있다.
목적을 점검할 때는 다음 질문을 차례로 던져 볼 수 있다.
- Why? 왜 해야 하지?
- For What? 무엇을 위해 해야 하지?
- So What? 그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고, 어떤 이득이 있지?
- But For? 하지 않으면 안 되나? 애초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아닐까?
책에 나오는 정주영 회장의 사례도 목적을 계속 위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묘지에 잔디를 깔려는 이유를 묻는다. 묘지가 푸르게 보여야 하는 이유도 묻는다. 돌아가신 분을 대우한다는 인상을 주려는 이유도 묻는다. 거기서 다시 사람들의 희생정신, 전쟁의 승리, 평화의 유지까지 이어 간다. 표면의 활동인 ‘잔디 깔기’에서 시작해 더 큰 목적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제목도 목적과 범위를 담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떠한 기획서를 만들려고 하는가?”에 대한 답이 제목이다. ‘무엇을 위해’는 목적이고 ‘어떠한 기획서’는 범위다. 그래서 기획서 제목은 가능하면 ‘~을 위한 ~(안)’의 형태로 잡을 수 있다. 제목이 짧은 것보다 목적과 범위를 담아 독자가 제목만 보고도 문서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정보 수집, 목적 명확화, 제목 설정을 마치면 기획의 방향이 결정된다.
클라이언트 블록에서는 팩트와 의견을 분리한다
방향을 잡고 나면 ‘니즈 분석’에 들어간다. 니즈 분석의 목적은 기획의 논리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문제해결형 기획을 시작하기 전에 방향을 먼저 잡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향 없이 분석을 시작하면 무엇을 위한 분석인지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먼저 명확히 해야 하는 영역이 클라이언트 블록이다. 클라이언트 블록을 정리할 때는 실무자의 생각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의뢰인의 니즈나 상사의 요구를 팩트에 입각해 확인하고 해결해야 할 기획과제를 분명히 하는 구간이다.
클라이언트 블록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 기획의 방향을 정한 뒤 현상을 분석한다. 현상은 반드시 입증할 수 있는 팩트여야 한다.
- 현상이 계속되면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지 파악한다. 영향은 의견에 해당하므로 객관적으로 살피고 가능하면 수치화한다. 측정할 기준이 없다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는 앙케트도 사용할 수 있다.
- 현상을 만든 원인을 분석한다. 원인 역시 입증할 수 있는 팩트여야 한다.
- 현상을 둘러싼 환경변화인 배경을 분석한다. 배경은 현상을 압박하고 어디론가 몰아가는 주위의 상태이므로 출처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 배경이 현상을 압박하는 방향에서 목표를 설정한다.
- 목표를 달성해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는 방향으로 목적을 다시 검증한다. 목적은 일의 본질이므로 하나의 구체적인 개별 목적을 잡는 것이 좋다.
- 나머지 개별 목적은 기대효과로 분류한다. 목적·목표·기대효과가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구분한다.
- 목표와 현상의 차이, 즉 갭을 도출해 기획과제를 명확히 한다.
여기서 영향은 최종 기획서에 그대로 남기는 항목이 아니다. 영향은 목적을 검증하고 기대효과를 도출하기 위한 논리적 수순에 가깝다. 실제 기획서로 옮길 때는 목적·목표·기대효과와 중복되는 부분을 덜어 내야 한다.
목적·목표·기대효과는 실무자가 작성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적는 항목은 아니다. 상사나 회사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을 명확히 정리하는 일이다. 현상·원인·배경에서 팩트를 분석하고 그 결과로 목표와 현상의 차이를 도출하면 기획과제가 남는다.
복잡한 사실은 피라미드 구조로 정리한다
실제 비즈니스 현장의 일은 한두 가지 팩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그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근거를 아래에 쌓는 피라미드 구조가 필요하다.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과제에 대한 답변, 즉 결론을 놓는다. 아래에는 왜 그런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는지를 논리와 근거로 제시한다. 결국 자기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근거의 구조다. 읽는 사람은 정점의 메시지를 먼저 확인하고 필요하면 아래로 내려가 근거를 검증할 수 있다.
피라미드 구조에는 가로의 법칙과 세로의 법칙이 있다. 가로의 법칙은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다. 각각의 사안이 서로 겹치지 않고 전체를 모았을 때 빠지는 부분이 없도록 정리하는 원칙이다. 세로의 법칙은 So What/Why So다. 사실에서 메시지를 뽑아내고 그 메시지가 정말 성립하는지 이유와 근거로 다시 확인한다.
MECE는 연령·성별·지역·가격대처럼 전체를 완전히 나눌 수 있는 기준에만 쓰이지 않는다. 완벽하게 중복과 누락이 없다고 단언하기 어렵더라도, 관리와 판단에 큰 혼란이 없도록 전체를 나누는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다. 기계적으로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그 구분이 상대방의 판단에 도움이 되는지 봐야 한다.
MECE의 기준은 구조, 메커니즘, 목적과 수단, 변화, 장래 예측으로 넓게 펼쳐진다. 구조를 볼 때는 전체와 개인, 본질과 현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처럼 나눌 수 있다. 메커니즘을 볼 때는 인과관계·상관관계·근원과 파생·보완관계처럼 관계를 기준으로 볼 수 있다. 목적과 수단, 전략과 전술, 목표와 실적, 문제와 과제도 서로 다른 기준이다. 변화는 단기와 장기, 연속과 비연속, 동태와 정태로 나눌 수 있고 장래를 예측할 때는 위험과 기회, 강점과 약점, 제약조건과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을 구분할 수 있다.
So What과 Why So로 논리를 검증한다
So What은 “이 사실들로부터 무엇을 알아낼 수 있지?”라고 묻는 일이다. 지금 가진 정보에서 핵심 메시지를 추출하는 과정이므로 팩트 파인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대로 Why So는 “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왜 이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지?”라고 물으며 이유와 근거를 캐는 일이다.
실무자는 팩트에서 메시지를 뽑아내는 So What을 많이 사용한다. 경영자는 실무자의 기획서를 Why So로 읽는다. 실무자가 도출한 결론을 그대로 보고하면 경영자는 그 결론이 왜 성립하는지 다시 묻는다. So What을 Why So로 검증하지 않으면 논리의 비약이 생기고 잘못된 팩트에서 출발하면 그럴듯하지만 얼토당토않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So What/Why So에는 통찰과 관찰의 두 종류가 있다. 알려진 사실에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것이 통찰이다. 하위 팩트들을 So What으로 묶어 요점을 찾고 그 요점이 잘 정리됐는지 Why So로 다시 확인하는 것은 관찰에 가깝다. 어느 쪽이든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놓인 팩트의 진실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배경과 현상은 연역과 귀납으로 연결한다
배경분석·현상분석·기획과제의 관계는 연역과 귀납이 서로 보완하는 구조여야 한다. 배경은 기획의 대전제가 되는 환경변화이고 현상은 기획 본제와 관련된 개별 사실이므로 소전제가 된다. 배경이 현상을 압박하고 현상에서 목표를 설정한 뒤 목표와 현상의 차이를 기획과제로 도출하는 흐름이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으로 연역, 귀납, 발상을 제시했다. 연역은 보편적인 진리에서 개별적인 것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기획 전체의 흐름은 연역적으로 구성할 수 있지만 실제 분석에서는 팩트에서 메시지를 끌어내는 귀납이 함께 필요하다. 피라미드 구조 안에서 So What/Why So를 거치며 배경과 현상의 메시지를 도출하는 이유다.
배경분석은 정치·경제·사회 동향 같은 시대변화, 자사와 경쟁사의 움직임, 기술·생태·소비자·시장 변화 등을 살피는 일이다. 자사의 비전과 전략, 업계 내 위상, 사회와 소비자가 기업을 평가하는 방식, 부서와 상사의 이해관계까지 분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를 STEEP 분석으로 정리하면 사회(Society), 기술(Technology), 경제(Economy), 생태(Ecology), 정치(Politics)의 환경변화를 살필 수 있다.
현상분석은 상품의 시장점유율과 매출액, 판매상황, 고객층, 인지도, 소비자가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이유, 판매점과 고객의 의견처럼 기획 본제에 관한 개별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기획 니즈 분석 단계에서는 이 두 분석을 통해 기획의 논리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배경은 대전제, 현상은 소전제, 기획과제는 두 사실의 관계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된다.
컨셉부터 해결책과 실행으로 나아간다
클라이언트 블록에서 기획과제를 명확히 했다면 컨셉 개발에 들어간다. 컨셉은 현상분석을 통해 확인한 과제에 대해 해결 방법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실무자의 의도와 생각이 들어간다.
컨셉을 정한 다음에는 해결책을 구체적인 액티비티(Activity, 활동) 단위로 찾아야 한다. 공략할 대상은 세 가지다.
- 원인: 클라이언트 블록에서 확인한 원인을 인과관계에 따라 논리적으로 제거한다.
- 장애요인: 원인이 장기화되었거나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기존 논리만으로 풀리지 않을 때는 상식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 기회요인: 변화 속에서 새롭게 열린 기회다. 배경분석에서 찾은 환경변화를 해결책으로 연결한다.
원인·장애요인·기회요인을 공략해 해결책을 찾으면 액션 플랜, 즉 실행계획을 세운다. 액티비티별 스케줄과 담당자를 정하고 예산을 수립한다. 그러나 기획은 실행계획을 세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실행해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기획 자체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행 시 예상되는 문제점을 찾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방했는데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발생 시 대책도 준비한다. 기획서에서는 실행 시 예상되는 문제점·예방대책·발생 시 대책을 묶어 ‘리스크 대책’으로 표현할 수 있다.
2부를 읽고 남긴 나만의 점검 질문
2부를 읽고 나서 기획의 속도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변화가 무엇인지, 이 일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제목의 목적과 범위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다음 팩트와 의견을 나누고 현상·원인·배경을 분석하고 목표와 현상의 차이로 기획과제를 좁혀야 한다.
내가 기억해 둘 흐름은 이렇다.
변화 파악 → 목적과 제목 설정 → 현상·원인·배경 분석 → 목표와 기획과제 명확화 → 컨셉 개발 → 원인·장애요인·기회요인 공략 → 액티비티와 리스크 대책으로 실행 연결
기획을 잘한다는 것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어디까지 정확히 좁혔는지 설명하고 그 문제에 맞는 실행을 끝까지 연결하는 일에 가깝다. 특히 클라이언트 블록에서는 내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팩트의 진실성을 확보해야 하며, 컨셉 블록부터는 내 의도를 책임 있게 드러내야 한다.
다음에 기획서를 검토할 때는 아래 질문부터 꺼내 보고 싶다.
- 이 기획은 어떤 변화에서 시작됐는가?
- 대목적이 아니라 지금 하려는 일의 개별 목적을 잡았는가?
- 제목에 목적과 범위가 함께 들어가 있는가?
- 현상·원인·배경은 입증할 수 있는 팩트인가?
- 목표와 현상의 차이로 기획과제가 명확해졌는가?
- 컨셉과 해결책이 액티비티·실행계획·리스크 대책으로 이어지는가?
1부에서 용어·목적·팩트의 기준을 세웠다면, 2부에서는 그 기준을 실제 기획의 흐름으로 움직였다. 다음에 기획서를 작성할 때는 해결책부터 적기보다 이 흐름의 어느 단계에 서 있는지 먼저 확인해 보려고 한다.
참고한 책
길영로, 《기획이란 무엇인가》. 2부 ‘문제해결형 기획의 프로세스와 방법론’에 남긴 독서 메모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앞서 읽은 1부의 메모는 《기획이란 무엇인가》 1부 독서노트에서 이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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